Volkswagen Magazine

LIVE SMARTER

more than classic,
Cuba.

‘쿠바’ 하면 혁명의 상징인 체 게바라가 두툼한 시가를 입에 문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다음으로는 웃통을 벗은 청년들이 낚시와 다이빙을 즐기는 말레콘의 방파제 풍경이 뒤따른다. 쿠바는 거리 곳곳이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것처럼 클래식한 장면이 가득하다. 여행자들이 동경하는 미지의 엘도라도답다.

글·사진 이수호(여행작가)

열정의 또 다른 이름, 아바나

쿠바로 들어가기는 비교적 쉽다. 우리나라와 사증을 체결한 국가가 아니라 입국이 까다로울 것으로 생각하지만 막상 도착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행 목적과 체류일 등 간단한 질문 몇 가지만 거치면 어느새 쿠바 땅이다. 다만 아직 우리나라와는 미수교국이라 여권이 아닌 항공권 뒷면에 임시 도장을 찍어줄 뿐.


멕시코 칸쿤에서 새벽 비행기에 올라 아바나에 도착, 옛 국회의사당 건물인 카피톨리오 옆에 자리한 여행자 숙소인 까사에 짐을 푼다. 환한 미소로 이방인을 반긴 백발의 푸근한 주인 아주머니는 첫인상부터 남다르다. 다짜고짜 포옹하며 양볼에 입을 맞춘다. 가만 보니 이 집은 한국인과 일본인 여행자만 받는 숙소로, 지구 반대편에서 반가운 한국인을 제법 만날 수 있다.

 

아바나 거리에는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 볼 수 없는 인력거와 마차 택시가 자주 지나다닌다. 집집마다 창문과 계단참에는 시가를 입에 문 사람들이 보인다. 15분 정도 걸었을까. 갑자기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폭우가 쏟아진다. 급한 대로 레스토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해 보지만, 비는 쉽사리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신 흥미로운 장면과 맞닥뜨린다. 거리를 걷던 흑인 남녀가 느닷없이 춤을 추는 것. 갑자기 청년이 먼저 리듬을 타더니 두 아가씨도 이어서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른다. 그들은 전문 춤꾼도, 거리의 예술가도 아니란다.

 

유독 흑인 비율이 높은 아바나에서는 유쾌한 이들의 몸짓처럼 재미난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길에서도 레스토랑에서도 레게 음악이 자주 흘러나오는 아바나에서는 대화를 나누던 아가씨들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얌전해 보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시가를 입에 물고 즉흥적으로 춤을 춘다. 남들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다. 진정 흑인 음악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아바나의 골목은 화보 그 자체다. 쓰러져가는 낡은 건물들은 스산하기보다 왠지 모를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현지인들은 생기롭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클래식

아바나 중심도로가 끝나자 해변을 낀 큰길이 나타난다. 큰길 한쪽에 자리한 주차장엔 70년도 더 되어 보이는 올드카가 주차돼 있다. 도로에서도 올드카가 자주 목격된다. 아바나 전체가 거대한 올드카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해변으로 접근하자 삼지창을 든 포세이돈의 동상이 보이고, 그 뒤로 방파제가 있다. 방파제엔 낚싯대를 던지는 현지인들이 빼곡하고, 이따금 웃통을 벗은 청년들도 삼삼오오 몰려다닌다.

 

가까운 앞바다엔 작은 배를 타고 낚시를 즐기는 이들도 보인다. 아바나의 대표 명소인 말레콘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곳이 아바나의 얼굴, 아니 쿠바의 얼굴이다. 가까운 바다 건너편엔 모로 성이 자리하고 요새 끝에는 하얀 등대가 외로이 서 있다. 낚시꾼들의 모습은 방파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방파제에 올라 바다를 굽어보니 파도의 높이가 제법 매섭다. 5m가 넘는 방파제 끝까지 때릴 정도로 높은 파도도 곧잘 몰려온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높이의 방파제 끝엔 웃통을 벗은 청년들이 몰려 있다. 서로 경쟁하듯 물에 뛰어들며 저마다 멋진 자세를 취하며 다이빙을 즐긴다.


아바나의 골목은 화보 그 자체다. 쓰러져가는 낡은 건물들은 스산하기보다 왠지 모를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그 사이로 보이는 현지인들은 생기롭다. 유명 사진작가들이 이곳을 찾아 사진집을 내는 이유를 알 만하다. 이쯤에서 여행자들을 위한 팁 하나. 최근 미국과 쿠바는 화해 국면에 접어들었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평행선을 달리던 두 나라는, 올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양국 국교 정상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면 자연히 미국 자본도 유입될 터다. 따라서 쿠바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특유의 클래식함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쿠바를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

조금 더 쿠바다운 곳, 트리니다드

숙소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아바나에서 택시를 대절해 쿠바 남부에 자리한 트리니다드로 향했다. 장거리임에도 쿠바는 물가가 싸기 때문에 3~4명 정도라면 택시를 흥정해서 떠나는 것이 저렴하다. 오후 5시, 트리니다드에 도착했을 때 한차례 소나기가 내렸는지 시내 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다.


“올라! 무초 구스토(안녕! 만나서 반가워요)!”
눈에 보이는 아담한 까사의 문을 열자 뚱뚱하고 인상 좋은 흑인 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긴다. 이곳에서도 역시나 뜨거운 포옹과 볼 키스를 받는다. 모든 쿠바 아주머니들은 이렇게 화끈한가. 짐을 정리하기 무섭게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아래층에서 솔솔 풍겨 온다. 식탁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푸짐하다. 토마토소스로 양념한 새우 요리를 애피타이저로 맛본 뒤, 여행자들은 약속한 듯 바닷가재를 뜯었다.

 

다음 코스는 야경이다. 이슬비가 살짝 뿌려진 트리니다드의 야경은 매우 분위기 있다. 음식점마다 작은 공연이 펼쳐지고, 골목엔 웃통을 벗은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가를 태운다. 흔히 생각하는 쿠바의 느낌이 물씬 나는 풍경이다. 광장이 잘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달콤 쌉쌀한 모히토 한 잔을 주문하고 공연을 기다린다. 비가 와 광장에서 살사 춤은 펼치지지 않았지만, 아쉬운 대로 작은 연주가 흘러나온다.
 

트리니다드 중심가에서 택시로 10분 정도 걸리는 앙콘 비치는 쿠바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해변이다. 오전임에도 햇볕은 매우 따갑고 해변은 한적하다. 먼 바다에는 아침부터 스노클링을 떠나는 요트가 보이고, 가까운 해변에는 태닝과 수영을 즐기는 이들이 보인다. 해변에서 즉흥적으로 스노클링을 떠나는 요트와 흥정에 성공해, 바로 배에 오른다. 멤버는 가이드와 콜롬비아 연인, 스위스에서 온 청년 그리고 나. 요트는 바람을 타고 먼 바다로 나아간다.

 

물에 들어가자 구명조끼 덕에 쉽게 떠오르지만, 수영에 젬병인 탓에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소금물을 먹기 일쑤다. 다시 심호흡을 하고 스노클링 장비를 가다듬은 뒤, 조심스럽게 물 아래를 살펴보니 물속은 신세계가 따로 없다. 바로 눈앞에서 열대어 떼가 춤추고, 가이드가 먹이를 던져주자 수십 마리가 몰리는 장관이 연출된다. 20m가 넘는 깊이의 바닥까지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바다는 매우 투명하다. 저 멀리 밑바닥에 있는 불가사리도 보이고, 그 옆에 조용히 헤엄치는 대형 물고기도 포착된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바다거북 두 마리가 유유히 지나간다. 대형 수족관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앙콘 비치는 쿠바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해변이다. 먼 바다에서는 스노클링을 떠나는 요트가, 한적한 해변에는 태닝과 수영을 즐기는 이들이 보인다.

체 게바라의 영혼이 잠든 곳, 산타클라라

다시 아바나로 향하던 중 산타클라라에 들러 짧은 관광을 하기로 한다. 트리니다드에서 산타클라라까지는 택시로 약 두 시간 거리. 산타클라라에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체 게바라 기념관이다. 전 세계 젊은이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체 게바라와 그의 동지 17명의 유골이 안치된 곳으로 쿠바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 코스다. 땡볕 아래 그의 동상이 우뚝 서 있고, 바로 옆엔 그가 또 다른 쿠바의 혁명가인 피델 카스트로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가 있다. 동상 아래에 자리한 기념관에 입장하면 체 게바라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피 튀기는 혁명 당시의 총격전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긴박하고, 탱크에 기대어 카메라를 향해 웃는 체 게바라의 또 다른 사진은 동네 형처럼 익살스럽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체 게바라의 혁명군과 정부군이 대치했던 철길. 혁명군의 불도저와 정부군의 기차 모형이 전시돼 있다. 1958년 체 게바라가 이끄는 24명의 혁명군이 300명 넘는 바티스타 정부군이 탄 무장 기차를 습격해, 열차를 탈취하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산타클라라는 체 게바라의 기념관과 이 철길이 다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한적한 도시다. 트리니다드 같은 근교 도시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것을 추천한다.

Travel Tip

우리나라에서 쿠바까지 가는 직항은 없다. 에어캐나다를 이용해, 밴쿠버와 토론토 등을 1~2회 경유해서 아바나로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에는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논의에 발맞춰, 미국에서 쿠바로 향하는 하늘길이 점점 열리고 있다. 미국 주요 항공사들이 미국-쿠바 간 직항을 추진 중이며 일부 항공사에서는 전세기를 운항한다.


쿠바의 화폐는 두 가지다. 현지인이 쓰는 모네다(MN 혹은 CUP으로 불린다)와 외국인 전용 화폐 쿡(CUC). 여행자가 사용하는 쿡은 모네다보다 가치가 20배 이상 높다. 하지만 저렴한 음식이나 물건을 살 때는 모네다도 쓸 수 있으니 각각 환전하는 것이 좋다. 결정적으로 쿠바 여행자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가 있다. 쿠바는 출국세 25쿡을 별도로 내야 한다. 쿡 화폐가 없으면 난감하니 공항을 벗어나기 전까지 여분의 돈을 꼭 남겨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