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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 sensitive furniture

어지간히 예민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촬영을 위해 작업대에 걸터앉아 달라는 요구를 거절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심증의 근거는 곳곳에 있었다. 그러나 오해였다. 대화를 되풀이하고 가구를 들여다볼수록, 윤여범은 세심하고 사려 깊은 가구 디자이너였다. 그의 가구가 그렇듯.

최은혜
사진 이혜련
헤어&메이크업 박슬기

남자가 만든 가구와 마주할 때, 보통 투박함이나 우직함 따위를 기대한다. 두툼한 목수의 손길을 떠올리면서. 한적하다 못해 적막한 기운마저 드는 판교 주택가. 이곳에 위치한 710 퍼니처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섣부른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710 퍼니처는 30대 초반의 훤칠한 남자, 가구 디자이너 윤여범이 쇼룸과 공방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이곳에 ‘마초’의 흔적은 없다. 쇼룸 한쪽 벽면을 물들인 올리브 컬러처럼, 차분하고 부드러운 공기가 공간을 메운다.

 

쇼룸에 배치된 핸드메이드 가구들은 710 퍼니처의 분위기 메이커. 가는 실루엣의 탁자와 책장, 모서리를 곡선으로 처리한 그릇장 등 하나같이 매끈한 자태를 풍긴다. 어느 것 하나 거칠어 보이는 면이 없으며, 무엇 하나 쉽게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는 제품이 없다.

날렵하고 유려한 곡선은 보는 이의 마음을 이완시킨다. 사소한 소품들도 마찬가지. 연필 길이만 한 티크 소재 병따개조차 반드럽다. 가구에 살갗을 대본다.

 

생각대로 보드랍고 매끄러운 촉감. 숨겨진 디테일을 발견했을 때는 쾌감마저 든다. 쇼룸 한구석의 키 작은 의자만 봐도 그렇다. 월넛으로 뼈대를 만들고 시트는 패브릭으로 마감한, 겉보기에는 심플한 의자다.

 

튼실하지만 그 밖의 특징은 없어 보이는. 그러나 뒷모습에 반전이 있다. 각도 조절 시 움직이는 관절에 사용된 황동, 각도 조절 받침대를 고정하는 가죽끈, 180°로 완전히 의자를 눕힐 수 있는 기능 등 촘촘한 디테일로 빛난다.

 

의자를 접고 펼 수 있어 이동과 보관을 쉽게 한 점에서는 만든 사람의 배려가 느껴진다.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상상하니 마음이 따듯해진다. 나만을 위한 선물 같은 느낌. 이런 맛에 사람들이 핸드메이드 가구를 찾는구나 싶다.

사람을 생각하는 가구

710 퍼니처의 가구는 ‘상남자’ 스타일은 아니어도 충분히 남자답다. 여자 입장에서는 결혼을 약속한 듬직한 애인 같다. 화려하지만 수명이 짧은 연애용 만남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배려심이 깊은 남자. 심플한 스타일을 추구하지만 남들이 잘 안 보는 디테일에 신경 쓰는 멋쟁이. 끝까지 가고 싶은 인연. 참고할 만한 모델이라도 있을까? 자연스레 가구를 만든 사람이 떠오른다.

윤 여범, 710 퍼니처의 유일한 가구 디자이너. 고객 상담, 디자인, 제작, 납품을 혼자 책임지는 오너. 예전에는 여자 옷을 만들었는데, 목공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구 디자이너 명함을 달게 됐다.

 

처음부터 가구에 뜻이 있던 건 아니지만 성향과 적성, 재능 등이 여러모로 잘 맞아 생업이 됐다. 손편지를 좋아하는 감성과 꼼꼼한 성격이 제대로 화학작용을 일으켜, 오픈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710 퍼니처는 핸드메이드 가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710 퍼니처의 가구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윤여범의 개성을 살린 오리지널 가구와 주문제작으로 이루어지는 오더메이드 가구다(오리지널 가구는 고객 요청에 따라 소재나 형태를 변경해 주문할 수도 있다). 두 방식 모두 가구의 용도와 사용자의 욕구를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다.


“가구 디자이너는 단순히 가구를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고객에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사람이에요. 특히 오더메이드 가구는 사용할 공간과 용도, 비용을 충분히 고려해서 제작해요. 그래서 고객과 최대한 깊이 소통하려는 편이에요. 고객의 집을 찾아가 실제로 가구가 놓일 공간을 보기도 하고요. 가구를 오랫동안 사용하려면 집 분위기와 어울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가구가 들어갈 집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하니까요.”

 

기성품보다 비싼 핸드메이드 가구를 재구매한다는 것은 만족도가 높다는 증거다. 710 퍼니처에는 두 번째, 세 번째 주문을 위해 쇼룸의 문을 두드리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 그중에는 아기에서 어린이로 성장한 자녀의 손을 잡고 재방문한 가족도 있고, 쇼룸에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고 전화로만 다섯 번이나 가구를 구매한 사람도 있다.

오픈하는 숍의 가구를 모두 710 퍼니처의 제품으로 구성한 고객도 있었다. 사적인 자리를 같이하며 친구가 된 경우도 있다. 어떤 형태로 맺은 인연이든, 가구를 만든 사람 입장에서 이보다 뿌듯한 순간은 없다.
 


처음처럼, 지금도, 오랫동안


수많은 업체를 뒤로하고 재구매 고객들이 다시 710 퍼니처로 유턴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용자를 배려한 기능도 감동적이지만, 가구에 만든 사람의 개성이 묻어나지 않았다면 다시 찾아올 일이 있었을까 싶다. 자연스러운 멋이 있으면서도 세련미를 갖춘, 윤여범 특유의 디자인 이야기다.


“핸드메이드라고 해도 가구 제작은 손으로만 하는 작업이 아니에요. 나무를 자르기 전부터 머리를 써야 해요. 어떤 곳에 쓸 가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만드는 사람의 개성이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 것과 비슷한 디자인, 혹은 다른 제품을 카피한 것에 지나지 않아요.”

개성과 기능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윤여범이 선택한 차는 폴로. 안 그래도 건물 앞 주차장에 단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폴로의 주인이 궁금했었다.

 

“작은 차를 좋아해요. 출퇴근 시 혼자 이동하다 보니 큰 차가 필요 없거든요. 거의 매일 용인서울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주행감과 연비 모두 만족합니다. 주말에 멀리 나갈 때도 든든해요. 그리고 장 볼 때 의외로 트렁크에 많이 실려요. 언제 어디를 가든지 늘 함께하는 차입니다.”


가구부터 자동차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대화를 나누는 동안 쇼룸에 찾아온 외부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710 퍼니처는 철저하게 예약 방문제로 운영하기 때문. 가구를 만들다가 고객을 맞이하면 흐름이 깨져, 작업이나 상담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꼼꼼히 마무리해야 하는 핸드메이드 가구의 특성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여느 가구 전시장처럼 아무 때나 드나들 수 없으니 고객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다.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오히려 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고객과 소통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더 많은 수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내린 선전포고다.

“1년 전에 만든 가구를 보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찬가지로, 지금 만든 가구를 1년 뒤에 다시 보면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당시 고객과 내가 모두 만족했다고 해도요. 개선할 점이 더 많이 보일수록 그만큼 내공이 쌓인 거라고 생각해요. 내공이 쌓인 상태에서는 더 좋은 가구를 만들 수 있겠지요. 그래서 지금 상태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해요.”


오랫동안 사랑받는 가구를 만들고 싶은 욕심은 가구를 만들기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다. 초심을 지키기 위해 가구를 처음 만든 날짜인 7월 10일을 기념해 ‘710 퍼니처’라는 이름을 지었다.

 

올 7월이 되면 710 퍼니처의 문을 연 지 꼬박 6년이 된다. 10년, 20년,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윤여범의 가구가 우리 곁에서 함께 호흡할 수 있기를.